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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위치:석물과 석축의 조경 > 묘지의 석물 조경
  • 묘지의 석물 조경
    묘역 조경에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묘역 주변에 설치한 석물이다. 묘역에 설치하는 석물은 종류도 다양하고 모양도 다양하며, 저마다 일정한 격식과 용도가 있다. 옛날에는 이러한 석물의 설치를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하여 일정한 관직에 해당하지 않으면 설치 할 수 없는 것이 많았으나 요즘에는 용도도 모르면서 남들이 하니까, 혹은 유명한 묘에 가보니까 의례히 있는 것이라서 그냥 따라서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묘역의 석물의 종류와 용도를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1. 신도비(神道碑)
    진한(秦漢) 이래로 죽어서는 공업이 있고 살아서는 덕정이 있는 자는 모두 돌로 비를 세웠는데 이것이 신도비다. 신도비는 살아생전에 웬만한 위업과 공훈을 세웠거나 도덕과 학문에 투철한 자들의 업적을 적은 7~ 8척 높이의 비석으로, 묘의 동남쪽 길가에 세운 것은 동남쪽이 신도(神道)였기 때문이며, 조선시대에는 정 3품 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에게는 신도비를 세우고, 그 이하는 묘갈을 세운다는 것이『경국대전』에 나와 있어 고관과 왕릉에만 설치하였으나 때로는 공신, 석유(碩儒) 등의 신도비를 왕명으로 세우게 한 적도 있었으며, 왕릉의 신도비는 문종 때 금지되어 왕릉 신도비는 세종의 것이 마지막이었다. 비문은 망인과 친한 문장가가 글을 짓고, 명필이 글을 썼다.    

    2. 산신석(山神石)
    그 묘를 쓰도록 허락해 주고, 보살펴 주는 산신에게 감사의 뜻으로 제수를 올리기 위해 마련된 장방형의 평평한 석상(石床)으로, 묘의 우측 뒤편에 설치한다. 크기는 상석 보다 적거나 엇비슷하고, 일반 민묘에서는, 산신에게 먼저 제수를 올리고 난후 묘에 참배를 하나, 왕릉에서는 왕릉 참배를 먼저 하고 난 뒤에 산신에게 제수를 올린다. 왕은 하늘의 아들이고, 조선팔도에 거주 하는 산신도 왕의 지배 하에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3. 병풍석(屛風石)
    왕릉에서는 묘의 주위에 곡장(曲墻)이라는 담을 쌓아 살기를 품은 바람인 팔요풍을 막아주고, 외부로부터 보호 하였지만, 일반 민묘에서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흙으로 쌓은 둑을 만들어 이의 역할을 하게 했는데, 우리가 보통 말 할 때는 내성이나 활개라고 한다. 병풍석은 내성의 안쪽에서 돌을 세워 병풍처럼 안쪽을 둘러, 내성에서 쌓은 흙이 흘러내림을 방지하고, 내성의 역할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4. 묘비(墓碑)
    산문으로 된 비문 문체를 서(序), 운문으로 된 것을 명(銘)이라 하고, 서와 명으로 된 비문을 비명병서(碑銘幷序) 또는 비명이라 한다. 비문은 서술하는 형식내용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비문의 서체(書體)로는 예서·해서·행서가 주로 쓰였다. 고려 이전에 세워져 현재까지 전해오는 비문들은 대부분 그 당시 일류 문인·서예가들이 쓴 것이므로 명품들이고, 조선시대의 비문들은 비 건립 풍습이 널리 퍼져 규격을 벗어나 다양성과 질박함을 보여준다. 묘비에는 망자의 생전의 벼슬과 추증 벼슬 명을 쓰고, 시호가 있으면 시호를, 부인과 부인의 묘, 묘의 좌향과 입석(立石) 일자 등을 기록하는데, 별다른 벼슬이 없거나 쓸 공적이 없으면 글자가 없는 백비를 세우기도 하였으며, 상석의 뒤, 묘의 앞에 세우는 것이 맞으나 신도비를 갈음하여 일대기를 함께 쓰고 묘를 등지고 봐서 묘의 좌측에 세우기도 한다.

    5. 호석(護石)
    묘의 외부를 보호하고 봉분의 토사 흘러내림을 막기 위하여 설치한 돌로 만든 봉분의 둘레석으로, 둘레돌, 열석(列石)이라고도 한다. 호석의 발생은 정확하지 않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나타나고 있다. 통일 신라에 들어오면서 보호기능이외에 장식적인 면에서도 발전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호석 사이에 12지신 상을 조각한 돌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고려 중기 이후에는 12지신 상이 입은 옷이 신선의 옷에서 관리들이 입는 관인복(官人服) 으로 바뀌어 졌으며, 12지신 상은 그대로 계속 이어져 오다가 조선시대 후기, 인조의 장릉에는 모란무늬를 조각하기도 하여 그 후부터는 모란 무늬도 많아졌다.  

    6. 망주석(望柱石)      
    묘의 좌우 앙옆에 하나씩 세우는 돌기둥으로 망두석, 망주석표, 석망주, 화표주라고도 하며, 줄여서 석주 또는 망주라고도 한다. 기능은 멀리서 보아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묘 표지였을 것으로 보이나 어느 시기부터 있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망주석은 통일 신라 이후의 것으로 보이는 괘릉과 흥덕왕릉의 것이 있다. 조선 초기의『국조오례의』에 의하면 능원에 설치되는 망주석은 기둥의 길이가 7자 3치, 아랫부분 7치 정도를 둥글게 깎아 받침대에 세우도록 되어 있다. 망주석에는 다람쥐모양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사전에도 보면 그냥 다람쥐라고 나와 있으나 다람쥐가 아니라 도롱뇽으로 왕릉의 것은 세호(細虎) 라고 달리 부른다. 도롱뇽은 육지와 물속에서 같이 살아가는 동물이므로, 아마도 혼이 도롱뇽을 타고 육지와 물속을 드나들면서 다니다가 멀리서 망주석을 보고 자기 집으로 찾아오는데, 왕일 경우에도 도롱뇽을 타고 다닌다고 하기엔 불경스러워 세호(細虎)라고 달리 부른 것으로 보인다.

    7. 상석(床石), 지대석(地臺石), 족석(足石),  
    상석(床石)은 분묘나 능원의 봉분 앞에 놓는 장방형의 넓적한 돌로 된 상을 말하며, 상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름에 대한 한자 표기는 『국조오례의』에는 석상(石牀)으로, 『상례비요』와『사례편람』에는 석상(石床)으로 달리 표기하고 있으며, 크기에 대해서는 『국조오례의』에서 능원에 설치하는 상석의 길이는 9자 9치, 너비는 6자 4치, 두께는 1자 5치라고 나와 있어 왕릉의 경우에는 그 크기가 정해져 있었으나, 『상례비요』에서는 합장일 경우에 두개나 한 개를 설치하고 크기는 편리한대로 따른다고 하여 정해진 것이 없었다.

    지대석(地臺石)은 상석을 놓을 자리 아래에 까는 상석 넓이의 받침대 돌이다.
          
    족석(足石)은 상석의 네 모서리를 받치는 북 모양의 돌로 북석, 고석(鼓石)이라고도 하며, 북 모양의 4면에 고기의 머리를 새기고,  높이는 1자 5치, 지름은 2자 2.5치 크기이나, 상석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8. 혼유석(魂遊石)
    혼유석은 능원에서는 봉분 앞에, 일반묘지에서는 봉분과 상석 사이에 놓는 장방형의 돌로, 영혼이 나와서 놀기도 하고 후손들이 묘제를 지낼 때는 그 자리에 앉아서 흠향도 하는 곳이다. 왕릉에서는 봉분 앞마다 각각 설치 하지만 일반 묘지에서 부부가 쌍분으로 나란히 있을 때에는, 두 봉분의 중간에 하나만 설치하기도 한다.

    9. 향로석(香爐石)
    향로석은 향안석이라고도 하는데, 옛말로는 석상(石床)이라고 불렀다. 네모반듯하거나, 육각형도 있으며, 네 다리를 갖춘 것과 통째로 된 것이 있으며, 향탁처럼 깎아 상석의 앞에 세우고 묘제를 지낼 때 향로를 얹어 두는 곳이다.
    향(香)은 사람에게서 나는 각종 냄새를 제거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갖가지 취기(臭氣)를 없애주는 역할을 하며, 고운 다습한 기후로 말미암아 몸에서 냄새가 많이 풍기는 인도에서 크게 성행했는데, 불교의 전래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다.『삼국유사』에 보면 중국의 양나라에서 향물(香物)을 보내 왔는데, 군신(君臣)이 그 이름과 쓰는 법을 몰라 묵호자(墨胡子)에게 물었더니 이를 향(香)이라 하였고, 향(香)을 불사르면 향기가 몹시 풍겨 신성(神聖)에 정성이 통한다고 하였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10. 장명등(長明燈)
    분묘 앞에 세우는 석조물의 일종으로 불을 밝힐 수 있게 돌로 네모지게 만든 등(燈)으로 석등룡(石燈龍), 혹은 석등(石燈)이라고도 말하며, 묘지뿐만 아니라 사찰이나 관가의 처마 끝에 달거나 마당에 기둥을 세워 불을 밝힐 수 있도록 장치한 것도 장명등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장명등은 일품재상(一品宰相)에 한하여 세울 수 있도록 한정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묘제(墓制)가 확립된 시기부터 묘지에 장명등이 세워졌을 것이라 여겨진다. 장명등은 받침대, 몸체, 지붕 부분 등으로 나누어지고, 받침대는 부분은 대부분 8각형 기둥모양이며, 몸체 부분은 등을 넣을 수 있게 네모지게 만들고 창을 내었으며, 지붕 부분은 정자의 지붕처럼 삿갓지붕을 조각하여 몸체를 보호 하였고, 세 부분을 분리하여 축조한 경우와 하나로 연결하여 축조한 것이 있으며, 불을 밝힐 수 있는 곳의 창이 없는 폐쇄형, 앞뒤로만 창이 뚫려 있는 전후방형, 네 모퉁이에 창이 있는 사방형 등이 있으며, 장명등의 전후 창은 묘의 좌향과 일치 시켜 배치하므로 창으로도 묘의 좌향을 가늠 할 수 있다.            

    11. 문인석(文人石), 무인석(武人石)
    문인석(文人石)은 분묘나 왕릉의 상석 앞에 좌우로 시립해 서있는 사람 모양의 석상 가운데 포(袍)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頭)를 쓰며, 손에는 홀[笏; 의식 절차를 적은 패)을 든 공복(公服) 차림의 석상으로 옛 문헌의 명칭은 ‘문석인(文石人)’이다. 대체적인 문인석의 얼굴은 둥글고 상하로 약간 긴 달걀형, 눈은 행인형(杏仁形)이며, 코 밑과 턱에 긴 수염을 선각(線刻)으로 나타냈고 턱의 수염은 턱밑으로 뻗어 홀 뒤에 숨었다. 관(冠)의 하부에서 턱 밑까지의 길이와 그 밑 신장의 비율은 1:5~1:3의 변화를 보이며, 왕릉에서는 문, 무인석을 같이 설치 하지만 일반 분묘에서는 망인이 문인이었을 경우에 문인석을 세웠다.

    무인석(武人石)은 분묘나 왕릉의 상석 앞에 좌우로 시립해 서있는 사람 모양의 석상 가운데 갑옷과 투구로 완전 무장하고, 얼굴은 크고 둥글며, 두 눈은 매섭거나 문인석보다 더 크게 뜨고 있으며, 문인석과는 달리 뺨과 턱과 다리의 굴곡이 대담하며, 입은 입술이 두껍고 굳게 다물고 있어 강건한 무사상을 한 석상으로 옛 문헌의 명칭은 ‘무석인(武石人)’이다. 허리에는 대를 두르고 중앙부에는 귀면(鬼面)이 달려 있으며, 칼은 칼집에 넣은 채 허리에 차고 있거나, 칼을 뽑아 두 손으로 지팡이처럼 잡고 있으며, 왕릉에서는 무, 문인석을 같이 설치 하지만 일반 분묘에서는 망인이 무인이었을 경우에 무인석을 세웠다.

    12. 기타 석물
    장대석(長臺石)은 묘의 봉분 앞 상석을 놓는 계절(階節) 부분과 절을 하는 배계절(拜階節) 부분을 구분하는 경계석(境界石)으로, 일반적으로는 장대석이라 부르지만 원래 말은 ‘계체석(階砌石)’이다.

    화병(花甁)은 화초를 꽂아 두는 꽃병 모양의 석물로 꽃을 꽂아 두는데 사용한다.

    주전석(酒煎石)은 술 주전자를 놓는 받침 모양의 석물이다.

    동자석(童子石)은 벼슬은 없었으나 학문이 높았거나, 벼슬이 낮아 문인석이나 무인석을 세울 수 없었던 사람들이 세운 것으로, 옛날의 것은 조용한 얼굴로 두 손을 마주잡고 시립하거나, 술잔을 올리는 형태가 많았으나 근래의 것은 불교식이나 도교식의 동자석이 많아 석상 표정이 밝아 졌지만 숙연하고 고풍스런 느낌이 적다.  

    동물석(動物石)은 초기의 호석에서 보이던 12지신 상의 변용으로, 고려 왕릉에서는 호석으로 12지신 석상을 세우고, 다시 동물석상을 만들어 묘의 주위에 빙 둘러 배치하기도 한 것이 조선 초기까지 이어져 왔으며, 고종과 순종은 황제라 칭하였으므로 능 입구의 홍살문에서부터 말, 낙타, 해치, 사자, 코끼리, 기린 등을 좌우에 배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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